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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켓(Phuket) 이해-푸켓역사를 중심으로


 

 





푸켓위치




푸켓은 태국에서 가장 큰섬으로 태국남서쪽 안다만해에 위치하고 있다. 방콕에서 남쪽으로 약 862킬로미터 떨어져 있으며, 태국 남부휴양지의 대명사로 관광산업의 3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푸켓은 적도에서 가까워 일년내내 온도변화가 거의 없으며 따뜻하다. 푸켓주변지역은 팡아(카오락,카오속,,팡아만,시밀란등을 포함), 크라비(피피섬포함)이다.


푸켓은 본래섬이었으나 1967년 사라신다리가 놓여, 사실상 육지나 다를 바 없다. 푸켓북쪽에는 팡아의 카오락지역이, 북동쪽에는 팡아시티,팡아만이 위치한다. 푸켓섬은 육지인 크라비 지역과 마주보고 있으며 중간에 피피섬이 위치한다. 푸켓섬 주변의 대표적인 섬은 피피섬,라차섬,산호섬(꺼해), 카이섬, 마이톤섬이 있으며, 그외 본섬, 꼬야오야이,꼬야오노이등이 위치한다. 약 32개의 크고 작은섬이 푸켓주변에 위치한다.


푸켓은 의외로 미얀마와 가깝다. 미얀마 남쪽은 푸켓북쪽에 위치한 카오락,시밀란섬, 수린섬등이 가까워 과거 미얀마 군대가 종종 카오락,푸켓까지 침략하는 일이 빈번했다. 미얀마 접경지역인 라농, 카오락,카오속,춤폰, 나컨랏차시마 지역등에는 미얀마 군사정부의 무능,독재를 피해  넘어온 미얀마 사람들이 현지화 되어 거주하기도 한다. 미얀마가 개방하면 푸켓,카오락지역은 제2의 도약이 가능하다는 보고서가 나오기도 한다.




 






푸켓기후



푸켓은 적도인근 지역이므로 일년내내 따뜻하다. 1년 평균기온은 낮시간에는 31~33도이고, 아침,저녁에는 23~25도이다. 1년은 크게 3계절로 나누어지는데 11월~2월은 건기,3월~5월초는 여름, 5월중순~10월은 우기이이다. 건기와 여름은 아침에는 비교적 시원하며 낮에는 뜨거운 날씨;이다. 11월~5월중순까지는 습하지 않아 여행하기 좋은 시기이다. 5월중순부터 10월말까지의 우기도 여행하기 비교적 좋다. 우기이기는 하나 주로 저녁이나 새벽에 비가 내리기 때문이다. 물론 우기에는 낮에 1-2시간 스콜이라는 열대성 소나기가 폭우처럼 종종 쏟아지기도 한다.




 







푸켓특성




푸켓은 길이가 대략 60킬로미터, 폭이 대략 30킬로미터인 형태의 섬으로, 산이 많은 섬이다. 푸켓의 약 70%가 열대우림지역이다. 푸켓은 말레이어' 부킷(Bukit)'에서 유래되었는데, 이것은 '언덕(hill) '또는 '낮은 산'을 의미한다. 바다위 배에서 바라보면 푸켓은 실제로 '낮은 산'내지 '언덕'으로 보인다.


푸켓은 푸켓으로 불리우기전에는 '딸랑(Thalang)'으로 불리웠다. 이 것은 말레이어 고어(古語)인 '테롱(telong)'에서 유래된 것으로  '곶(cape)'을 의미한다. 푸켓타운 북쪽지역은 과거 푸켓이름인  "딸랑"이라는 이름을 아직도 사용한다. 푸켓지형이 태국남부 팡아지역에 붙어 툭튀어나온 곶(cape)형태이기 때문이다. 푸켓북부 딸랑지역에는 딸랑 푸켓국립박물관,테스코로터스 딸랑점등이 위치한다.


서양문헌및 서양의 항해일지에 보면 푸켓은 '정실론(Jung Ceylon) ,또는 정크실론(Junkceylon)'으로 기록되었다. 이 명칭은 말레이어 탄중살랑(Tanjung Salang)의 변형인데, 의미는 "케이프 살랑(Cape Salang)"이다. 즉, 푸켓의 오래전 명칭은 육지의 툭튀어나온 형태인 곶(Cape)을 사용했음을 엿볼 수 있다. 말레이어에서 '탄중'은 '곶(cape)'을 의미하므로,  탄중아루,탄중분가,탄중카랑은 모두 곶(cape)형태이다. 파통비치 쇼핑몰 정실론(Jungceylon) 이름도 이와 관련이 있다.





 

-카론뷰포인트에서 바라본 카론,카타,카타노이비치 모습





푸켓문화



푸켓문화는 태국어느 지방과 달리 독특하다. 푸켓문화의 중심은 태국과 중국이다. 푸켓섬의 원주민에 해당하는 말레이문화,바다집시문화역시 푸켓문화에 녹아있다. 푸켓은 말레이시아아 가깝고, 섬 지역이므로 말레이시아 섬주민들,그리고 동남아 섬들를 떠도는 바다집시가 원주민이었다. 푸켓주류가 태국인이라고는 하나 푸켓에 오래전부터 거주한 주민들이 정통타이족이라고 주장하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말레이시아에서 건너온 말레이족, 바다집시로 보는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푸켓광산,고무농장개발이 시작되고, 관광업이 발달함에 따라 방콕,태국북부,북동부지역 거주민들이 대거 푸켓으로 이주하면서 타이족이 푸켓의 주류가 된 것으로 보는 쪽이 우세하다.


푸켓문화를 현재 주도하는 세력은 중국계 태국인들이다. 이들 중국계태국인들의 외모는 중국인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한국인과 구별하기 힘들정도로 한국인과 비슷하기도 하다. 물론,  중국계 태국인들은 타이족과 결혼하면서 중국인 같지않은 사람들도 있지만 푸켓에 오랫동안 거주한 사람들 상당수는 중국인피가 흐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푸켓 중국계 태국인들은 대부분 19세기말 푸켓 주석광산개발로 이주한 중국이민자들의 후손들이다. 이들은 푸켓에 오랫전부터 자리를 잡은 타이족,말레이족들에 비해, 역사,문화,전통,정신을 중시했기 때문에 푸켓문화를 선도했다. 그 결과 채식주의자 축제인 낀쩨축제를 비롯 푸켓축제들 상당수는 중국에서 나온 것이다. 푸켓 곳곳에 위치한 사원은 중국불교,유교색이 강하며, 중국 역사,문화를 배경으로 한 사원들로 중국색이 강하다. 푸켓문화는 중국인들이 지배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푸켓은 말레이족들이 원주민이었기 때문에 무슬림들이 적지않다. 푸켓 무슬림들은 푸켓의 주류인 중국계 태국인들에게는 밀리지만 무시못할 세력이다. 이들 무슬림들은 주로 푸켓북쪽의 서쪽과 동쪽 해안지역에 거주한다. 서쪽의 마이카오,나이양,나이톤부리,라얀,라구나단지,수린비치, 그리고 푸켓북부 딸랑, 동쪽의 아오포,마프라오섬,푸켓타운 서쪽해안지대,판와비치, 라와이비치지역등에 거주한다. 이들 무슬림들은 이슬람사원을 중심으로 지역사회를 운영한다. 바다집시들의 후예들은 푸켓동쪽 해안가에서 어촌을 형성하며 고기잡이를 주업으로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 라와이비치 해산물시장 옆에 위치한 집시마을이 바다집시들의 후예들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이들은 고기잡이와 조개등으로 만든 수공예 기념품 판매등으로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다.




 

-푸켓타운내 중국사원






푸켓의 역사



태국인들이 기록한 푸켓역사는 빈약하다. 푸켓을 언급한 기록들 대부분은 유럽탐험가들, 무역상들의 기록들 또는 지도이다. 유럽지도에는 푸켓을 'Junk Ceylon'으로 표기했다. 3세기경 유럽지리학자들은 말레이해협으로 가는 길에서 푸켓을 '장시랑(Jang Si Lang)'으로 표기했는데, 이 이름은 '탄중시랑'의 변형이다.' 탄중'은 말레이어로 곶(cape)을 의미하므로 '곶 시랑'의 의미이다. 장시랑(Jang Si Lang) 은 다시 정실론 또는 정크실론으로 변했다. 결국 ' 탄중시랑- 장시랑- 정실론'의 변화를 거쳐 오늘의 정실론으로 바뀐 것이다. 따라서 푸켓은 두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오래전 이름으로 시랑곶을 의미하는 정실론, 현재의 이름으로 산,언덕을 의미하는 말레이어 부킷에서 유래된 푸켓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푸켓집시.푸켓최초의 원주민  


푸켓최초의 원주민은 동남아, 오세아니아주를 주무대로한 니그리토(Negrito)였다. 이들을 흔히 차오레(Chao Leh) 즉 바다집시라 부른다. 이들은 동남아 섬들을 돌아다니면서 물고기, 조개류. 진주를 채집하면서 생황을 영위했다. 이들의 후손들을 푸켓서쪽 해안가에서 볼 수 있는데 피부가 흑인과 다르지 않으면서 체구가 작다. 이들은 팡아만, 피피섬등에서 볼 수 있고, 드물게 팡아만 시캐누 가이드들중에서도 볼 수 있다. 팡아만 시캐누 가이드로, 고기잡이어부로, 롱테일보트택시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푸켓에서는 판와비치,라와이비치 지역에서도 볼 수 있다. 오랜세월  타이족, 중국계 태국인들과 결혼하면서 이들 바다집시들의 특징들이 사라지고 있다.


푸켓이 태국에 편입된 것은 13세기이다. 당시 태국 수코타이왕국의 군대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에 근거지를 둔 시리비자야 제국( Sirivijaya Empire ) 싸워서 푸켓을 손에 넣었다, 13세기 이전까지만해도 푸켓은 태국이 아닌 인도네시아 영향권이었다.





 

-라와이비치 집시마을의 어린이들




-버마와의 전쟁


푸켓의 역사를 놓고 말할 때 버마와의 전쟁을 빼놓을 수가 없다. 태국은 버마와 1785년 Ten Armies' Wars라 불리우는 전쟁을 치렀다. 버마와의 전쟁에서 선봉에 나선 사람이 바로 Thao Thep Krasattri 와 Thao Si Sunthon 이라 불리우는 자매였다. 버마 군대가 푸켓을 침공했을 때, 푸켓군대를 맡은 사령관은 죽었다. 버마군들은 이사실을 알고 쉽게 푸켓을 손에 넣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푸켓사령관의 미망인 Khun Jan과 자매 Khun Mook은 푸켓섬의 모든 여성들에게 군복을 입고 딸랑시티 성벽에 모이라고 명령했다. 버마병사들은 딸랑시티 성벽뒤에 모여있는 엄청난 병사들(군복을 입은 푸켓여성들)의 수와 위세에 늘려 진격명령을 내릴 수가 없었다. 식량도 부족해 할  수 없이 버마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버마와의 전쟁에 지대한 공을 세운 두자매(미망인 Khun Jan과 자매 Khun Mook)는 라마1세로부터  Thao Thep Kasatri . Thao Sri Sunthon라는 영예로운 호칭을 받았다. 이들 두자매의 용맹함을 기리는 영웅자매동상은 공항에서 푸켓타운 방향으로 가는 402번도로에서,  라구나단지,아오포로 갈리는 도로와 만나는 아눗사와리 지역에 위치한다. 푸켓역사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 딸랑 국립박물관도 영웅자매동상인근에 위치한다.




 

-영웅자매동상






-푸켓 주석광산, 골프장으로의 변신


푸켓은 1992년 카투지역의 주석광산이 마지막으로 문닫을 때까지 주석생산지역으로 유명했다. 주석은 카오락과 타쿠파지역의 광산에서 주로 채굴되었는데 푸켓이 주석광산의 중심지였다. 푸켓이 주석광산지역으로 특히 주목받은 배경에는 날씨가 한몫거들었다.  몬순기의 거친바다를 피해 푸켓으로 들어온 유럽,인도,중국 무역상들은 푸켓의 주석광산들을 보고 푸켓주석 무역에 관심을 돌렸다. 18세기까지  푸켓은 영국,프랑스,독일,포루투갈 상인들의 인기무역항이었다.아시아 무역을 주도하는 유럽 무역상들은 중국 남쪽 복건성,사천성지역의 중국인들을 대거 푸켓으로 데려왔다. 수천명의 중국인이 푸켓으로 들어와 노동집약적인 주석광산의 광부로 일했다. 이들의 근로환경은 최악의 저임금.고온다습한 날씨, 열악한 생활환경,과중한 작업으로 대표되는 그야말로 신종노예나 다를 바 없는 환경이었다.


푸켓 왓찰롱 사원 기록에 의하면 2만5천명의 중국인 노동자들이 폭동을 일으켰는데 2개의 푸켓사원 주지스님의 지휘하에 푸켓현지 태국인들이 이들 폭동을 진압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시간이 흘러 중국으로부터 건너온 상인들, 중국인들이 주석광산업의 최후 수혜자가 되어 푸켓의 부를 독차지햇고, 그 결과 다수가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푸켓에 남았다. 이들은 현재의 푸켓타운 올드타운 지역을 중심으로 상점,음식점,숙박업,사창가,술집,무역상등으로 그들의 업종을 다양화시켜 푸켓에서 영향력을 높였다,. 그들의 후손이 오늘날 푸켓 주요 호텔,리조트의 오너가 되었고, 푸켓호텔,투어,스파,레스토랑,쇼핑몰등 푸켓 여행업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순수한 주석덩어리들은 1932년 왕정에 대항한 군부혁명까지 화폐로 사용되었고, 푸켓에서 세금을 지불하는 법정통화로 사용되었다.


 

-왓찰롱




주석광산은 푸켓의 발달을 촉진시켰으나 푸켓주민들의 골칫거리이기도 했다. 주석광산개발은 산림을 훼손하는 것은 물론, 주석제련소를 가동하면서 공기오염및 지하수 오염등 환경파괴가 심각할정도로 일어났다. 결국 1985년, 5만명이상의 푸켓주민들이 참여해서 주석제련소를 불태우고, 공장시설물들을 파괴했다. 역설적이게도 주석광산 개발은 푸켓골프산업의 발달을 촉진시켰다. 푸켓광산업자들은 푸켓정부의 묵인하에 암석으로 둘러쌓인 협곡을 훼손시켰고, 그결과 협곡은 시간이 흘러 완만한 처녀림이 되었다. 그로인해 푸켓은 골프장으로 이상적인 환경을 갖춘 다수의 세계적인 골프장을 개발할 수 있었다. 푸켓최초의 골프장이 과거 푸켓주석광산지역에 오픈했다. 푸켓 주요 골프장은 과거 주석광산지역에 위치한다.  



 

-푸켓주석광산형태





-중국인 노동자들의 이주


푸켓의 역사에서 중국인 노동자들의 이주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중국 노동자들의 대거 이주전까지 푸켓은 아주 자그만한 어촌마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을 푸켓으로 초대한 것은 당연히 주석광산업이다. 물론, 중국본토인들이 대거 푸켓으로 이주하게 된 배경에는 서구열강의 식민지로서 갈갈이 찢기고, 경제가 파탄이 난 중국경제의 몰락이 있다. 중국인들이 언제부터 푸켓으로 이주한지는 정확히 모르나 중국인들 상당수는 중국이 서구열강의 식민지로 페허가된 19세기에 푸켓으로 이주한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본토에서 건너온 2만5천명의 중국 주석광산광부들이 열악한 환경에 대항해서 1876년에 폭동을 일으켰다는 기록이 왓찰롱사원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19세기말 푸켓타운 모습




푸켓으로 이주한 중국인 그룹은 노동자그룹이었다. 이들은 어떠한 환경이든지 적응할 수 있는 특성과, 근면한 특성이 있었다. 이어 이주한 그룹은 이들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물품,음식,음료등을 판매하는 중국상인,자본가들이었다. 이들은 중국역사,전통,역사,문화,교육을 중시한 사람들로 소위 식자층이었다. 이들은 현재의 푸켓올드타운을 중심으로 주거지와 상가를 형성하면서 빠르게 푸켓주류사회로 편입했고, 이들은 이민자들의 특성이 다 그러하듯이 부의 축적,교육에 힘쏟았다. 그 결과, 푸켓타운및 해변지역의 땅들을 사들여 오늘날 푸켓을 주도하는 리조트들의 오너가 되었다. 대표적인 호텔이 카타타니,두앙짓, 선윙까말라,로열파라다이스 푸켓,더키파통,푸켓 더슬레이트등이 있다. 이들 중국계 태국인들이 푸켓관광업의 대표주자들이 되었다.   


이들 푸켓이주 중국인들의 종교,문화,음식등은 현재 푸켓곳곳에서 볼 수 있다. 물론 푸켓타운내 올드타운에서 중국계태국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으며, 푸켓타운 곳곳에 중국사원,중국계 태국인들의 사천성,복건성 음식들을 맛볼 수 있다. 푸켓에서 판매하는 태국요리들 상당수는 이들 중국계 태국인들 중국요리의 퓨전이다. 대표적인 것이 푸켓타운 칫라유왓의 바미국수이다.



 

-올드푸켓타운내 선데이마켓





-푸켓고무농장



푸켓은 천연고무생산지역으로도 유명하다. 푸켓 경제를 책임지는 두개의 산업중 하나가 바로 고무농장이다. 다른하나는 당연히 관광업이다. 천연고무는 라텍스라 불리워지는 흰색의 우유용액으로 만들어지는 것으로  Hevea Brasiliensis 나무가 가장 상품성이 높다. 푸켓에 도입된 것은 1903년으로 푸켓섬 30%이상을 고무나무농장으로 개발했다. 푸켓고무농장을 운영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무슬림들이다. 이들은 푸켓북쪽 마이카오비치에서 푸켓 영웅자매상이 위치한 아웃사와리 지역까지 상당부분의 지역을 고무농장으로 운영하고 있다.


천연고무산업이 동남아에서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의 플랜테이션 농업으로부터 시작한 사업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이들 무슬림들이 푸켓 고무산업을 선도하고 있다는 것은 이해할만한 일이다. 고무산업종사자들은 주로 패밀리 비즈니스를 하는데 보통 한가구당 평균 16라이(1라이는 대략 484sqm, 약 146평) 즉,2350평정도의 농장을 가지고 있다. 푸켓의 역사를 보면 푸켓의 부유한 가족들은 주석광산업으로 돈을 벌었고, 가난한 가족들은 고무나무 농장으로 돈을 벌었다. 오늘날 태국은 푸켓을 중심으로 수랏타니,나컨랏차시마지역등에 고무농장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 고무농장에서 생산하는 천연고무로 인해  세계적인 천연고무생산국이자 수출국이되었다.  



 

-푸켓고무나무농장에서 고무를 채취하는 농장주






-푸켓관광산업의 시작




푸켓관광업은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1970년대 카타비치중앙에 클럽메드가 자리를 잡았고, 1980년대 방타오비치의 석호(해안가에 위치한 호수)를 개발한 라구나단지가 들어섰다. 푸켓관광업의 시작을 알린 파통비치는 당시 자그마한 코티지,방갈로에 불과한 게스트하우스급들의 숙소들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관광객들이 몰려오면서 이들 영세한 숙소들은 대지구입을 서둘렀고, 시설을 늘려 규모를 키웠다. 그결과 오늘날의 두앙짓파통, 머린파통호텔, 푸켓매리엇 머린비치(舊 머린비치푸켓리조트)등의 고급리조트가 되었다. 푸켓관광산업은 푸켓섬을 육지와 연결시키는 사라신다리(1967년)가 놓이면서 급격하게 커졌다. 방콕으로부터 오는 수많은 버스들이 관광객들을 푸켓으로 실어날랐다. 푸켓공항(1970년대)에 오픈함에 따라 푸켓은 동남아 대표 휴양지로 알려지게되었다.  



 

-1970년대의 파통비치





-푸켓쓰나미



푸켓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쓰나미이다. 2004년 12월25일 푸켓, 카오락 그리고 피피섬등 주변섬에 들이닥친 쓰나미는 푸켓에 엄청난 피해를 주었다. 쓰나미로 인해 푸켓은 약 250명이 사망했고, 카오락지역 리조트를 짓던 수천명의 버마노동자들이 사망했다. 쓰나미로부터 많은 피해를 당한 비치는 파통,카말라,카론,카타비치였다. 쓰나미로 인해 푸켓에서 스몰비즈니스를 하던 수많은 유럽,호주인들은 푸켓을 떠나 타일랜드만 사무이섬으로 이주했다. 쓰나미가 일어난 푸켓은 지진과 태풍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안다만해에 접한다고 생각해서 비교적 안전하다는 타일랜드만에 접하는 사무이섬으로 이주한 것이다. 이들은 오늘의 사무이를 만든 주역이기도 하다.   


태국정부는 쓰나미의 재발방지를 위해 22개의 미국산 쓰나미 경보장치를 인도양 곳곳에 설치해 쓰나미 경보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이후 푸켓은 쓰나미경보장치를 가장 안전하게 관리하는 지역으로 인정받아 한동안 주춤하던 관광객들이 다시 들어오기 시작해 푸켓관광산업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푸켓지역 분류


푸켓섬은 크게 서쪽, 남동쪽, 내륙, 그리고 주변섬으로 나누어진다.


서쪽- 마이카오비치,나이톤,나이양,방타오,수린,램싱,카말라,파통,카론,카타가 위치한다.

남동쪽- 찰롱베이, 케이프판와, 나이한,라와이,야누이비치가 위치한다.

내륙- 푸켓타운,방롱,코시레,딸랑,프라테우국립공원(Phra Taew National Park)이 위치한다.

푸켓주변섬- 본섬,산호섬,론섬,마이톤섬,라차섬,마프라오섬,나카섬,코야오,코판위섬등이 위치한다.


푸켓은 9개의 도시가 있다.


-찰롱베이

-카말라

-카론

-카타

-나이톤&나이양

-파통

-푸켓타운

-라와이

-수린




 

-클릭하면 크게 보입니다.






푸켓의 중심지 두곳, 푸켓타운과 파통비치.



-푸켓타운


푸켓의 중심지는 두곳이다. 푸켓현지인들의 중심지는 푸켓타운이고, 여행자들의 중심지는 파통비치이다. 푸켓타운과 파통비치는 전혀 다른 이질적인 문화가 존재한다. 푸켓타운은 중국계 태국인을 중심으로 다양한 태국현지인들의 삶의 터전이다. 물가는 태국인 생활수준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저렴한 것이 특징이다. 푸켓타운은 올드타운과 로빈산 백화점이 중심이지만 푸켓인구가 늘어나고 푸켓경제가 커지면서 중심지가 변하고 있다. 푸켓센트럴 페스티벌을 시작으로 푸켓공항방향에 푸켓을 대표하는 쇼핑몰이 들어서면서 푸켓타운 지도를 새로 그리고 있더. 푸켓 센트럴 페스티벌, 마크로할인점,빅씨, 테스코로터스, 프리미엄아울렛등이 이들 푸켓공항방향 대로변에 늘어서 있다. 방콕 시암파라곤, 시암센터, 엠포리움 백화점 소유주인 더몰그룹이 현재의 테스코 로터스 할인점 건너편에 푸켓최대 백화점을 건설할 계획이다.  



 

-푸켓타운






-파통비치


파통비치는 푸켓외국여행자들의 중심지이다. 돈많은 외국인들의 중심지이므로 모든 물가는 외국인들에 맞추어져 음식점,식음료 판매상점들의 가격이 높은 편이다. 파통비치의 레스토랑,바, 상점들의 인테리어, 상품진열등도 외국인들 수준에 맞추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푸켓타운의 태국인들은 파통비치지역을 푸켓의 일부로 보기보다는 외국인들이 거주하는 특별지역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파통비치는 푸켓에서 가장 먼저 개발한 지역으로 1970년부터 해변을 중심으로 방갈로,코티지, 게스트하우스등이 지어졌다. 유흥가인 방라로드를 중심으로 파통비치는 발달했으며, 2006년 정실론 쇼핑몰이 지어짐에 따라 파통비치의 중심은 방라로드에서 정실론 쇼핑몰과 주변지역으로 바뀌었다. 정실론 쇼핑몰의 오픈으로 정실론 주변지역이 급격하게 개발되어 호텔,콘도,상가지역으로 발달하게 되었고, 도로가 새로 놓였다. 그 결과 파통비치 지역은 과거 저렴한 숙소들, 서민들의 주거지였던 나나이 도로지역도 서서히 고급호텔,고급주택 주거지로 변하고 있다.




 

-파통비치



푸켓의 한국인



푸켓에 한국인이 이주하게 된 것은 관광업때문이다. 1989년 한국정부가 해외여행자유화를 전격 실시하자 푸켓은 방콕,파타야와 함께 태국관광의 대표적인 휴양지가 되었다. 아시아의 발전된 모습을 보고 싶은 여행자들은 주로 홍콩,싱가포르를 찾았으나 바다와 해변을 선호하는 여행객들은 푸켓을 찾았다. 푸켓은 가족여행,신혼여행팀이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가되면서 한국여행객들에게 소문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늘어나는 신혼여행객들을 위한 풀빌라가 푸켓 전역에 지어져 2010년경 최대의 호황기를 맞이했다.


 2010년 이전까지 푸켓은 한국여행객들의 대표신혼여행지였다. 2011년 이후로 서서히 신혼여행객들의 수가 줄어드는 대신 가족여행객들이 푸켓을 찾음으로 푸켓은 현재 가족여행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여행지가되었다. 푸켓여행시장의 변화에 따라 한국시장에 의존한 수많은 풀빌라들은 경영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하면서 매년 숙박비를  내리는 추세다. 반면에 가족여행객들에게 다양한시설과 혜택을 주는 아웃리거라구나 푸켓비치리조트, 앙사나라구나,선윙까말라, 카타타니,홀리데이인 푸켓등이 푸켓에서 인기 리조트로 올라섰다. 


푸켓거주 한국인들은 90%이상이 관광 또는 관광업관련 업종에 종사한다. 여행업,가이드,한식당,패키지여행사.해양스포츠 관련 스킨스쿠버,해양투어사, 쇼핑점,스파.마사지업에 종사한다. 최근에는 국제학교 1~3년 단기유학 학생들이 늘어나면서 푸켓한인사회의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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