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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켓 시노포르투기스(Sino-Portuguese) 건축물에 대한 이해

                             




푸켓현지인들의 거주지인 푸켓타운을 방문하면 독특한 건축물,주택들이 보인다. 중국양식인 것 같기도 하고, 유럽 스페인, 포루투갈 또는 영국식민지풍 양식인 것 같기도 한 건축물이 보인다. 푸켓 올드타운에서 보이는 건축양식은 방콕에서도 볼 수 있다. 차이나타운과 주변 지역, 실롬지역, 강변도로로 태국1번 도로인 짜로엔끄롱(CharoenKrung Rd)에서도 보인다. 우리는 이들 건축물, 주택을 흔히 시노 포르투기스(Sino - Portuguese) 양식이라 부른다. 푸켓주요호텔,레스토랑 홈페이지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되는 단어가 바로 시노 포루투기스(Sino - Portuguese)이다.  이들 호텔,레스토랑들은 푸켓의 역사유산이라 부를 수 있는 시노 포르투기스 스타일의 건축물임을 자랑스러워하고 홈페이지에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시노포르투기스에서 '시노(Sino)'는 라틴어' Sinae'에서 유래된 단어로 중국(China)을 의미하며,포르투기스(Portuguese)는 포르투갈의 형용사형으로 "포르투갈의" " 포르투갈 사람의"의 의미이다. 결국, 시노포르투갈 양식이라는 중국과 포르투갈 건축양식이 혼합된 건축양식임을 이해할 수 있다. 시노포루투갈 양식은 푸켓올드타운에서 시작해 호텔,리조트건축에 많이 응용되었다. JW매리엇 마이카오비치, 센타라그랜드비치 카론, 웨스틴시레이베이,두앙짓 파통, 푸켓매리엇 머린비치리조트,더올드푸켓카론,카타비치리조트,풀만 판와비치리조트, 케이프판와리조트, 타본팜비치,타본비치 빌리지,리틀뇨냐,푸켓타운의 카사블랑카등등에서 시노포루투기스 양식을 엿볼 수 있다.


시노 포르투기스 양식 건축물은 푸켓에 언제 전파되었을까. 일부 잡지,여행정보 책자에서는 포루투갈 사람들이 푸켓에 거주하면서 발달한 건축물이라고 소개하나 이는 잘못된 서술이다. 16세기경 아유타야 왕조시절, 포루투갈 탐험가 Fernão Mendes Pinto가 푸켓이 아닌 당시 수도인 아유타야를 방문해 태국을 서술하면서 푸켓을 같이 서술한 기록은 있으나 포루투갈인들이 푸켓에 이주한 기록은 없다. 푸켓역사에서 거론되는 국가는 태국,미얀마,중국,말레이시아,프랑스,영국정도이다. 그렇다면 왜 푸켓에 시노포르투갈 양식의 건축물이 많을까.


푸켓 시노포르투기스 건축양식은 중국이민자들의 역사와 같이한다. 19세기말  파통비치와 푸켓타운 중간에 해당하는 카투지역(Kathu)지역은 주석광산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고무나무를 중심으로 하는 플랜테이션 농업, 그리고 주석광산은 태국 남부의 자그마한 섬에 불과했던 푸켓을 태국을 대표하는 섬으로 올려놓았다. 중국남부 복건성,사천성출신의 노동자들이 푸켓으로 대거 몰려왔다. 이들 중국 노동자들이 몰려오기전 푸켓타운은 쌀농사를 주로하는 푸켓대표농경지였다.비가오면 진흙탕투성이인 농촌의 모습을 간직한 곳이었으나 이들 노동자들이 몰려오면서 농지들은 하나 둘 주택가로 바뀌었다.    


 

푸켓정부는 쌀농사보다 주석광산으로 나오는 돈,중국이주민들의 소비,주거지가 형성되면서 각종 상점들로부터 거두는 세금등이 여러모로 이득이었기 때문에 쌀농사를 더이상 독려하지 않았다. 과거에는 쌀,바나나,파인애플등 다수의 농작물을 재배했으나 이들 쌀,과일,농작물 다수는 플랜테이션 농업,무역이 활성화된 인근 말레이시아 페낭에서 수입을 했다. 푸켓농산물들은 가격면에서 대기업이나 다를 바 없는 페낭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생산되는 농산물 가격에서 경쟁이 되지 못했다. 푸켓현지인들도 농사보다는 돈을 쉽게 벌 수 있는 광산업이나 중국이주민을 상대로 식당,유흥주점을 운영하는 것이 여러모로 나았다.


푸켓타운으로 이주한 중국 이주민들은 푸켓타운의 허르스름한 태국 주택들을  멋진 중국풍의 건축물로 개조또는 건축하기 시작했다.이들 중국풍의 주택들은 처음에는 임시주택형태의 1층 판자집이 대부분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튼튼한 통나무를 이용한 2층집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얼마안가 튼튼한 목재,벽돌을 사용하고, 점토타일로 지붕을 덮은 모르타르 형태의 주택들이 들어서면서 푸켓타운의 모습이 서서히 변해갔다. 푸켓타운 초기의 집들은 화려하기 보다는 소박한 형태의 집들이 많았다. 일년내내 내리쬐는 태양,더운 열기를 피하기위해 두꺼운 벽을 사용했다. 두꺼운 벽은 뜨거운 태양으로부터 나오는 열기를 막고, 집안의 차가운 기운을 보존하는 역할을 했다. 또한 외딴 독채보다는 집을 계속연결해서 단지 지붕만 태양을 막는 도구로 사용했다.  푸켓 올드타운의 집들이 여러개의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이유는 푸켓의 뜨거운 태양을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인 것이다. 


푸켓타운 중국이민자들의 이러한 초기집들은 타쿠파(Takupa)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이주민들이 광산,식당,숙박,주점으로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부를 축적했고 그로인해 주택형태에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20세기 초, 주석광산으로 돈을 번 중국인들이 디벅(Debuk) 도로변으로 상점들을 열기시작했다. 태국어로 디벅은 '주석'을 의미한다. 디벅 즉, 주석이 푸켓의 모습을 바꿔 놓았다.  상점,주택들은 성공한 중국이민자들의 달라진 위상을 말하려는 듯 규모가 커지고 멋스러운 건축디자인이 도입되었다. 이중 Tan clan towkay(태국이름 Wisetnukoonkij)는 디벅도로변에 가장 규모가 큰 상점을 지었다.그는 말레이시아 페낭건축물의 아름다움에 반해 페낭스타일의 상점을 지었다. 이것이 오늘날 푸켓에서 말하는 '시노포르투기스' 스타일의 효시가 되었다. 그러나, 이름에 약간의 착오가 있었다. 사실, 그가 지은 건물은 시노포르투기스 스타일이 아닌 '시노 잉글리쉬(Sino English)' 스타일에 가까웠다. 왜냐하면, 이 상점의 형태는 싱가폴을 만든 영국 햄프셔출신 스템포드 래플즈경(Stamford Raffles)에 도입된 건축양식이었기 때문이다.


싱가폴 총독이었던  스템포드 래플즈는 싱가포르를 지배했을 당시 각 상점들의 전면 폭에 의해 세금을 받았다. 따라서 상점주들은 세금을 덜내기위해 상점전면의 폭을 최대한 좁게 하기위해 보통 단지 5미터폭을 유지했고 대신 건물을 직사각형 형태의 좁고 기다란 건물을 만들었다. 래플즈 총독은 뜨거운 태양,열대지방의 스콜을 피하기위해 각 상점들의 앞부분을 보행길(walkway)로 만들었다. 이러한 독특한 보행길은 싱가폴,말레이시아,홍콩,푸켓등에서 볼 수 있는데 영국식민지풍의 건축양식이다. 이러한 영국식민지풍의 보행길이 푸켓올드타운 상점들에도 응용된 것이다. 따라서 시노포루트기스 양식이라기보다는 시노 잉글리쉬 양식으로 봐야 한다는 역사학자들이 많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스템포드 래플즈 총독은 프랑스 파리의 도시 설계자들과 달리 주민들에게 강제로 나무심기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무심기의 태만으로 다른 동남아 영국 해협식민지(Straits Settlements)와 마찬가지로 푸켓타운은 하루종일 뜨거운 태양으로부터 고통을 당하고 있다. 푸켓타운에 영국풍 건축양식을 도입한 중국계 이주민들은 나무심기를 게을리한 스템포드 래플즈의 정책을 그대로 따라한 결과 오늘날 올드푸켓타운에서 나무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보니 올드푸켓타운을 10분만 걸어도 뜨거운 태양에 녹초가 되기도 한다. 역사기록을 보면 1890년, 출라롱컨 대왕(King Chulalongkorn)이 푸켓을 방문할 당시 푸켓타운에는 685개의 상점이 있었는데, 이중 318개는 벽돌로, 367개는 나무로 지어진 상점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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